8가지에 대한 규명, 재발방지, 제도적 변화 촉구까지 이뤄져야하므로 진정 대신 '직권조사'
여성단체 대표 및 피해자 변호사들, 국가인권위원장과 면담... 직권조사 요청의 의미 전달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문화·구조를 살펴야 하는 사안"... 빨리 결정
[데일리중앙 김용숙 기자]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등 여성단체들은 28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촉구 공동행동에 나섰다.
이날 오전 10시 공동행동 참가자 150여 명은 여성의 존엄과 인권을 상징하는 보라색 복장과 우산을 갖추고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앞에 모여 집회를 가진 뒤 '서울시에 인권을, 여성노동자에게 평등을'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워 국가인권위원회까지 피해자와 함께하겠다는 연대의 보랏빛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에 앞서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는 "오늘 우리는 여기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에게 연대하기 위해 모였다. 오늘 우리는 여기 여성의 인권과 평등을 말하기 위해 모였다. 오늘 우리는 성폭력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과 사회를 요구하기 위해 모였다"고 공동행동 취지를 설명했다.
배 상임대표는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안전하기를, 사람으로서 존중받기를, 평등하기를 원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그 어떤 개입도 없이 공정하게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랏빛 행진은 오전 10시20분 서울도서관 앞에서 출발해 서울시청 잔디광장을 돌아 을지로 1가와 2가를 거쳐 10시40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도착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 사회로 진행된 국가인권위 앞 기자회견에서 여성단체 대표들의 발언이 쏟아졌다.
먼저 국가인권위에 직권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위원회법 1조에 명시된 대로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단체 대표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요청 및 제도개선 요구 8가지를 발표했다.
이들은 △서울시 및 관계자들의 성차별적 직원 채용 및 성차별적 업무강요 △박원순 전 시장의 성희롱 및 강제추행 등 성적 괴롭힘으로 인한 피해의 정도 △서울시 및 관계자들의 직장 내 성희롱 및 성범죄 피해에 관한 방조 △직장내 성폭력, 성희롱 피해에 대한 미흡한 피해구제절차 △7월 8일자 고소사실이 박원순 전 시장에게 누설된 경위에 대한 조사 △성폭력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적극적 조치 이행 여부 △선출직공무원 성폭력에 대한 징계조치 등 제도적 견제장치 마련 요청 △직장내 성폭력예방교육의무의 이행 여부 등에 대한 진상 파악과 제도 개선, 적절한 조치 등을 국가인권위에 요청했다.
다음으로 김재련·이지은·서혜진 등 이 사건 피해자 변호사들이 차례로 나서 국가인권위에 직권조사를 요청하는 이유를 얘기했다.
변호사들은 "직권조사는 당사자 신청과 무관하게 진행이 가능하고 당사자 신청 범위를 초과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사실조사 및 판단을 통해 제도 개선을 촉구할 수 있다"며 "이번 사안의 성격은 특정 개인에 의한 일탈적 성추행 행위에 대한 형사적 처벌에 한정될 수 없으며 위 여덟 가지 사안에 대한 규명, 재발방지, 제도적 변화 촉구까지 이뤄져야 하므로 '직권조사' 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진정은 당사자 신청을 전제로 하며 당사자가 주장한 범위 안에서 조사 및 판단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 대신 직권조사를 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 자라에서는 또 피해자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 총 3268건 가운데 14건이 공동행동 참가자가 대신 읽는 방식으로 소개됐다.
연대의 메시지에는 '용기'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내용은 대체로 "대한민국의 수많은 여성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당신을 지지하고 연대할 것이라는 걸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며 피해자를 잊지 않고 끝까지 응원하고 함께하겠다는 것들이었다.
여성단체 대표들은 기자회견 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과 면담을 하고 공동행동 및 직권조사 요청의 의미를 전달하고 제대로 조사해줄 것을 당부했다.
면담에는 여성단체 대표 5명(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김경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과 피해자 변호사 3명(김재련, 이지은, 서혜진)이 함께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이 사안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문화·구조를 살펴야 하는 사안"이라며 인권위 내 절차를 거쳐 빠른 시일 안에 직권조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용숙 기자 shyeol@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