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진중권 얘기 통합하고 싶어
작품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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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진중권 얘기 통합하고 싶어
작품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겠다"
  • 석희열 기자
  • 승인 2012.06.10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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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성산 감독... 텔링콘서트 <땡큐 코리아> 공연 흥행대박

▲ 정성산 영화감독은 지난 8일 경기도 부천 집무실에서 <데일리중앙>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문화에 대한 철학과 작품세계에 대해 폭넓게 얘기했다.
ⓒ 데일리중앙 윤용
"정치 같은 건 싫습니다. 저는 제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새로운 비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문화의 신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영화감독 정성산(43)씨. 정 감독은 요즘 텔링콘서트 <땡큐 코리아(Thank you Korea)>에 몰입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정 감독의 열정 하나로 이뤄진 이 새로운 형태의 문화 장르에 대중들이 열광하면서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 '긍정과 희망비전 텔링콘서트'라는 수식어가 붙은 <땡큐 코리아>는 모노콘서트와 모노연극, 모노뮤지컬이 결합된 한국 최초의 신개념 아트 콘서트다.

마이크, 스크린, 빔프로젝트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배우 한 사람이 무대에서 노래하고 얘기하고, 연기하며 50분 간 관객과 호흡한다. 3월부터 시작한 공연은 5월 말 현재 180회를 채웠다. 올해 1000회 공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외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지난 8일 오후 부천의 NK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정 감독을 만났다. 기자와는 두 세번 안면이 있는 사이다.

그는 대뜸 "오늘도 공연 주문이 8건이나 들어왔다"고 자랑부터 했다.

3월 초 수원대에서 막이 오른 텔링콘서트 <땡큐코리아>는 벌써 180회 공연을 넘겼다. 전국의 초중고와 대학교, 군부대, 회사 등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다. 공연마다 적게는 100여 명에서 많게는 2000여 명의 관객이 모인다. 연인원 13만여 명이 이 공연을 봤다고 한다.

지난 2월 6일 통일부 산하 통일교육원에서 서울 경기지역 교장선생님들, 정훈장교들, 대학 교수들 앞에서 쇼케이스를 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즉석에서 공연 주문이 쇄도했다.

정 감독은 "첫 공연을 하고 나니 입소문을 타면서 전화통이 불이 나더라"고 했다.

작품은 직접 기획하고 대본도 손수 썼다. 물론 연출도 정 감독이 맡았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감동스럽게 전달하고 국군포로의 딸인 북한 여성의 일대기를 모노연극 형식으로 풀어낸다.

정 감독은 1994년 북한을 탈출해 이듬해 한국에 정착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늘 '탈북 출신'이라는 꼬리말이 붙어 다닌다.

그는 평양연극영화대학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했다. 한국에 정착한 뒤 96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해 북에서 못다한 공부를 마쳤다. 그후 97년 임권택 감독의 <노는 계집 창> 조연출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에 뛰어 들었다. 영화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동해물과 백두산이> 등의 시나리오 작업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이야기를 다뤄 나라 안팎에서 큰 파장을 낳았던 뮤지컬 <요덕스토리>는 그의 가족사가 모티브가 됐다.

탈북 배경을 물었다. "남한의 대북방송을 들었던 게 탈북의 계기가 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결정적인 것은 반공사상 때문이다. 반공사상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이 점점 더 북한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싫었다. 한쪽에서는 김정일 화형식하고 공화국기 찢고 이러고, 또 반대편에서는 다른 논리를 펴고. 자꾸 정치논리로 북한이 나뉘어지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정 감독은 평양연극영화대학 졸업반이던 1994년 7월 6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군에 배치된다. 당시 북한은 대학생들의 사상 동요를 막기 위해 최전선으로 보냈다. 정 감독은 개성의 군부대에 배치됐다.

남한이 김 주석 사망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해 그해 7월 14일 대북방송인 '사회교육방송'을 듣다가 들켜 현행범으로 잡혔다. 동료 중의 한 명이 군 보위부에 신고를 한 것이다.

결국 중앙보위부의 현장 조사를 받은 뒤 사리원 노동연대(군 형무소)에 수용돼 두 달 동안 빡세게 취조를 받았다. 그러다 9월 개성에 있는 군사재판소에서 13년형의 선고를 받고 수용소로 돌아가던 중 호송차가 구르는 사고가 나 그 틈에 탈출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기차를 타고 평양에 왔더니 우리 집은 저 때문에 완전히 쑥대밭이 됐더라. 부모님이 양강도로 추방됐다고 해서 찾으러 나섰다가 국경지대인 혜산역에서 수비대의 추격을 받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했다."

정 감독은 중국에서 베트남, 홍콩 등지를 오가며 탈북 기회를 엿보다 이듬해인 1995년 1월 6일 홍콩 이민국을 거쳐 안기부 직원들에 이끌려 남한땅을 밟았다.

그가 남한에서 문화활동을 하는 게 알려지면서 2003년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어머니와 형도 행방불명됐다. 자신을 찾아 중국까지 넘어왔다가 국경 수비대에 붙잡혀간 조카 둘은 홍역으로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땡큐 코리아>에는 남한으로 탈출시키려다 실패한 조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예술가로서 한을 풀어내는 것이 모두 작품으로 완성된 셈이다.

이 작품을 기획한 의도가 궁금했다.

"결정적인 것은 반공사상 때문이다. 반공사상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이 점점 더 북한에서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싫었다. 한쪽에서는 김정일 화형식하고 공화국기 찢고 이러고, 또 반대편에서는 다른 논리를 펴고. 자꾸 정치논리로 북한이 나뉘어지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그는 "'요덕스토리'는 북한의 인권과 존엄, 자존심 등 순수함을 얘기했는데 남한에서는 좌우로 나뉘더라. 한나라당 의원만 보러 오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보면 안되는 것으로 생각하더라. 그래서 북한 인권을 얘기해서 뭐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고 당시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던 중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찾아왔다. 2011년 8월께 한 노병이 500만원을 들고 찾아와 정 감독에게 무엇인가를 해보라고 권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땡큐 코리아>를 기획하고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정 감독은 "진보-보수 두 진영을 화해하고 통합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땡큐코리아를 만들었다"고 했다. "공연 보면 알겠지만 순수한 동심으로 돌아가 조국에 살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색을 배제하고 조갑제-진중권의 얘기를 다 들어본 뒤 그것을 통합하고 싶었노라고 했다. 조갑제 <월간조선> 전 사장과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각각 대표적인 보수논객, 진보논객이다.

영화감독·뮤지컬 감독·애니메이션 연출가·소설가·공연기획자·작사가·제작자···.  그는 "뒤돌아보면 제 운명에 대해 정말 또박또박 잘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제 자신의 노력에 한번도 거짓말하지 않았다"며 뿌듯해 했다.

▲ 지난 8일 부천시 정성산 감독 집무실에서 정 감독과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른쪽이 정성산 감독.
ⓒ 데일리중앙 윤용
어떤 감독으로 불리고 싶은 지 물었다. "흥행 감독"이라는 의외의 대답이 튀어 나왔다.

그는 "흥행 감독으로 불리고 싶다. 돈을 벌어 우리 식구들, 회사 직원들 잘살게 하고 좋아하는 작품 맘껏 해보고 싶다. 제 작품을 시장에서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산업화해가자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정 감독은 현재 <땡큐 코리아> 공연 수입의 대부분을 배우에게 지급하고 있다. 1회 공연에 20만~30만원의 수입으로는 배우 출연료 대기에도 빠듯한 것이 현실. 정부와 정책당국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에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묻자 "내년에 첫 영화제작이 대중들의 사랑을 듬뿍 받아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내년 개봉 예정으로 북한의 깡패이야기, 사나이들의 눈물나는 우정과 사랑을 담은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다. 이를테면 북한판 '범죄와의 전쟁' 내지 '친구'를 떠올리면 된다.

정성산 감독의 머리 속에는 문화창작을 위한 컨텐츠가 무궁무진해 보였다. 텔링콘서트 <땡큐 코리아> 공연 문의는 전화(☎ 032-623-0131~2)를 걸면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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