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뮤즈클럽에서는 80분 동안 환상적인 라이브 무대가 펼쳐졌다. 특유의 저음인 알토에서 소프라노를 넘나드는 그의 공연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 더욱 매혹적이었다.
1999년 11월 번잡한 도심을 피해 청평으로 이사온 지도 벌써 햇수로 10년째다. 되도록이면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전원생활에 집중했다. 때문에 궁금증이 더해진 팬들은 그가 사는 청평으로 직접 찾아온다. 지금껏 문주란 뮤즈클럽을 다녀간 사람이 수만명을 헤아린다.
9주년 기념공연이 열린 이날도 라이브 카페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100여 명의 열성팬들이 자리를 채웠다. 하얀색 셔츠에 금빛 원피스를 받쳐 입고 무대에 오른 문씨는 '눈물의 북송선'으로 오프닝을 장식했다. 최근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첫 곡으로 골랐다고 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히트곡 외에도 1953년 백설희씨가 불러 크게 히트했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봄날은 간다'를 불렀다. 연하고 부드러운 노랫말에 눈물나는 서정이 묻어났다. 그는 이 노래를 다 부른 뒤 "선배님들의 노래를 부르면 눈물이 나려고 한다. 가사 속에 우리 인생이 다 녹아 있는 듯하다"고 했다.
문사모(문주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는 이날 문주란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며 40여 년에 걸친 그의 노래 인생을 기렸다. 이에 문씨는 "한결같이 저를 지지해 주는 문사모는 제가 흔들리고 쓰러질 때마다 일으켜 세워주는 생명수와 같은 존재"라고 화답했다.
이들은 문씨가 올 봄 발표한 새 곡 '그냥'(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이라는 노래와 최성수씨의 '동행'을 합창했다. 멀리 전주와 대구, 진주 등지에서 찾아온 팬들과의 이별이 아쉬운 때문인지 문주란씨는 '방울새'와 '파도'를 앙코르곡으로 선물했다.
공연 뒤 문씨와 잠시 만났다.
타인으로부터 주목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즐거움, 큰 행복일 게다. 문씨는 때로 평범한 일상으로의 일탈을 꿈꿀 때가 있다고 했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소리치고 싶을 땐 마음껏 떠들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자유가 그립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부쩍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는 "예술이라는 게 시대의 변화를 따라서 변할 뿐이지 죽는 것은 아니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자신을 쉬게 하면서 성찰하는 시간을 좀 갖고 싶다"고 말했다.
10년째 접어드는 청평 생활은 행복한 지 물었다. "만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단 하나 어려움이 있다면 종업원을 거느린다는 것이다. 이런 일(라이브 카페 운영)을 해보니까 예상하지 못한 일로 속상할 때가 많이 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문씨는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갖게 되더라도 현재의 뮤즈클럽 운영은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9년 간의 강행군에 따른 피로감을 털어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팬들과 만나겠다는 것이다.
- 앙코르 곡 '방울새' 인상깊게 들었다. 원래 누가 부른 노래인가.
"이수미씨가 불렀던 노래다. 인상깊게 들었다니 다행이다."
- 백설희씨의 '봄날은 간다'를 부르던데, 가사가 너무 애틋하다.
"평소 너무너무 좋아하는 노래다. 옛날 선배님들은 노래를 참 잘 해야만 했다. 부처처럼 가만히 노래만 부르는 것 같지만 인생을 노래하는 거다. 우리 삶이란 게 노래 가사와 멜로디에 다 들어 있다. 그런데 요즘 노래를 들어보면,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전달하려는지도 모르겠더라. 그런 점이 좀 아쉽다."
- 여기는 사계절을 가장 섬세하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계절을 눈으로, 몸으로 보고 느끼고 와 닿을 때마다 세월의 무상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계절을 가장 가깝게 접하다 보니까 느끼는 게 많다. 우리 인생도 계절의 변화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계절의 경계 지점에 서면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해진다."
- 40여 년 가수 생활하면서 애환도 많았을 텐데, 혹 후회하거나 회환이 사무칠 때도 있었나.
"후회는 없는데, 노래를 하지 않고 공부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런 회환이 들 때는 더러 있다. 부모님 바람대로 공부를 좀 더 했으면 다른 쪽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도 있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하면서 산다. 그러나 가수 생활에 후회는 없다.
공인으로 살다 보니까 일상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때로는 고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 참 부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남으로부터 주목받지 않고 살 수 있으니까. 되풀이되는 일상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 문사모 같은 열성팬이 존재하는 한 라이브 공연을 계속할 생각인가.
"그래야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재충전의 기회를 갖고 싶다. 9년 동안 라이브 공연을 하면서 심신이 많이 지쳐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을 하다보니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나 쉬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그런 시간을 좀 갖고 싶다. 그래야 팬들과도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