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파업 6개월... 간호사 10명 중 6명 전공의 업무 강요받아
상태바
의사 파업 6개월... 간호사 10명 중 6명 전공의 업무 강요받아
  • 김영민 기자
  • 승인 2024.08.20 11: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상 병원 61% 시범사업 미참여로 법 보호도 못 받아... "간호법안 제정 시급"
신규간호사 76% 발령 무기 연기... 대형병원 대부분 내년 모집 계획마저 없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정치적 파업, 여러 부작용고 폐해 낳고 있어
간호협회 "환자 안전 위해 끝까지 의료현장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호해야"
간호협회 "환자 안전 위해 끝까지 의료현장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호해야"copyright 데일리중앙
의사 파업이 6개월이 되고 있는 가운데 간호사 10명 중 6명은 전공의의 업무를 강요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호할 간호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 데일리중앙

[데일리중앙 김영민 기자]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지 6개월이 지난 가운데 현장 간호사 10명 중 6명이  전공의 업무를 강요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공백에 따른 병원 쪽의 일방적인 강요로 현장 간호사들은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면서도 관련 교육은 1시간 남짓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대상 의료기관이면서도 이에 참여하지 않는 병원이 61%에 달해 이들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경우 법적인 보호마저 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걸로 분석됐다.

또 상급종합병원에 채용됐으나 지금까지 발령이 무기한 연기된 신규 간호사가 76%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가운데 대부분 대형병원들이 내년 신규 간호사 모집 계획마저 없는 것으로 조사돼 간호대학 4학년 재학 중인 예비 간호사들이 고용 절벽과 마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정치적 파업이 여러 부작용과 폐해를 낳고 있는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지난 6월 19일부터 7월 8일까지 종합병원과 전공의 수련병원 등 387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실태 조사' 결과를 20일 밝혔다.

조사 결과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관은 전체의 39%인 151개 기관에 불과했고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에서 진료지원 업무를 수행하는 간호사는 1만3502명이었다.

간호협회가 지난해 운영한 '불법진료 신고센터'에 의료법 위반 사례로 신고된 의료기관과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는 의료기관을 비교한 결과 매칭율이 88%(133개 기관)에 달했다.

또 간호사 10명 가운데 6명은 병원 쪽으로부터 전공의 업무를 강요받아 수행하면서도 시범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의 경우 법적인 보호마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현장 간호사들은 환자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두려움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업무 수행으로 인해 많은 심적 부담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간호협회는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현장 간호사들은 "점점 더 일이 넘어오고 교육하지 않은 일을 시킨다거나 시범사업 과정에서 30분∼1시간 정도만 교육한 후 업무에 투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수련의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데 업무 범위도 명확하지 않고 책임소재도 불명확한 데다 업무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따로 없어 수련의의 업무를 간호사가 간호사를 가르치는 상황"이라고 현장 상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 의료공백 사태 이후 병원들은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신규 간호사 발령마저 무기한 연기하면서 신규 간호사 발령도 큰 폭으로 줄었다.

간호협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건강보험통계' 자료를 재구성해 분석한 결과 최근 5년간(2019년∼2023년) 1분기 대비 2분기 근무 간호사 평균 증가율은 크게 감소했다.

이를 종별로 보면 상급종합병원은 5년 평균 1334명이 늘었으나 올해는 오히려 194명 줄었다. 종합병원 역시 지난 5년 평균보다 근무 간호사 수가 2046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병원급 이상 전체 간호사 증가 인원도 5년 평균의 65% 수준에 머물렀다.

이 결과 지난 13일 현재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조사에 참여한 41개 의료기관의 경우 지난해 올해 발령 인원을 8390명 선발했으나 지금까지 발령하지 못한 신규 간호사가 전체의 76%(6376명)를 차지했다.

이들 상급종합병원 가운데 31개 의료기관은 간호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예비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되는 신규 간호사 모집 계획마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현재 간호사 국시를 앞둔 4학년 간호대생들은 채용 인원이 줄어 취업 경쟁은 심해지고 휴학을 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취업 절벽에 내몰리고 있다.

간호협회 탁영란 회장은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생명과 환자 안전을 위해 끝까지 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체계가 너무나 허술하고 미흡하다는 점이었다"며 간호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탁 회장은 "정부 시범사업 지침에는 '근로기준법 준수'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만 의사 파업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간호사들의 근무 환경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면서 "신규간호사들은 자신의 삶의 방향마저 잃어버린 채 불안해하고 있고 졸업을 앞둔 예비간호사들은 고용절벽에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탁 회장은 "이제는 진료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간호사 교육 지원과 함께 신규간호사와 예비간호사들에 대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며 의료 공백 사태 이후 현장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에 대한 적정한 보상체계도 마련돼야 한다"며 "더 이상 간호사에게 희생만을 강요하지 않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국회에서 간호법안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영민 기자 shyeol@dailiang.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