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치하에서 1937년 9월 21일부터 11월 15일까지 두 달 동안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됐던 한인들의 사진과 친필서명이 들어 있는 최고 90년 전 문건이 공개된 것. 옛 소련이 고려인들에 대한 일련의 '정치적 억압'에 관한 문건 총 34책이 5일(현지시간) 하바로프스크주 국립문서 보관소에서 완전 공개 됐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국회의원은 이날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주 국립문서보관소에서 '1933~1937년 간 고려인들에 대한 정치적 억압'에 관한 문서 총 34책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완벽하게 전체를 열람했다"고 밝혔다.
이 문서에는 1920년대의 한국인 명부가 사진과 함께 친필서명 자료까지 들어있어 거의 1세기 전의 우리 선조들의 실상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의원은 "스탈린 치하에서 이뤄진 한인 강제 이주는 1930년대 당시 러시아의 극동사령부가 있던 하바로프스크에서 '일본의 잠재적 첩자'로 분류된 한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기 위해 고려인의 인구 분포와 소득, 교육정도, 경제력, 법적 상태 등 광범위한 정보를 1932년부터 약 3년 동안 정밀 조사했다"고 밝혔다.
이후 1935년부터 2년 동안 직장에서 강제 해고하고 한인들이 갖고 있던 무기를 모두 빼앗는 등 치밀한 계획을 세워 1937년 7월 포시에트 지역에서 최초로 고려인 8가구를 시범 이주시켰다. 그런 다음 각주별로 대규모 강제 이주지역과 이주 인원을 할당했다고 박 의원은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 선조들에게 강제로 국적 취득 등을 요구했으며 관련 서류에는 그 당시 한인들의 사진과 친필서명 등의 가족 관계와 재산 정도까지 모두 기록돼 있다. 그 이후에 옛 소련은 군인 중심으로 이주조직대가 구성돼 군사 작전하듯이 치밀하게 실행에 옮겨진 것으로 문건은 증언하고 있다.
박선영 의원은 "오늘 열람한 문건 34편에는 바제므스키지역 고려인은 남카자흐스탄의 아랄해쪽으로 이주시켰고, 아무르주와 하바로프스크 한인들은 카자흐스탄으로, 연해주 한인들은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시킴으로써 한인 20만명을 모두 중앙아시아로 축출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개된 문건에는 고려인들이 심하게 저항하며 이주 장비들을 빼앗기도 하는 등 극렬히 저항한 과정과 결과도 세세히 기록돼 있다.
박 의원은 "20만명을 강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2만5000여 명이 사망하고 한인들의 저항이 심해지자 옛 소련 중앙정부는 하바로프스크에 있던 극동사령부에 '이주에 따른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행정명령서를 보냈으나 실제로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보상은커녕 이주 후에는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가지고 간 물건들을 목록까지 문서로 작성해 남겨놓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하바로프스크주 국립문서보관소의 올레크두슈틴 소장은 이날 박선영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의 역사학자들은 가끔 찾아와 한인 관련 문건을 보고 갔지만 한국인이 열람 신청을 한 것은 하바로프스크 역사상 처음"이라며 "그러나 한인 관련 문서 가운데는 아직도 비밀해제가 되지 않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박선영 의원은 "1863년에 농민 13세대가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 정착한 이후 150년 동안 극동지역과 중앙아시아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한인들은 일제시대와 옛 소련 그리고 러시아 CIS 국가들로 분리된 지금까지도 굴곡진 역사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이들에 대해 가해졌던 '정치적 억압'의 원인과 과정, 결과를 꼼꼼하게 파악해 과감한 역사청산 작업을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미 기자 kjsk@daili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