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를 유혈 진압하고 권력을 잡은 '신군부'는 사회정화라는 이름으로 불량배 집중 단속기간을 정해 일상적으로 단속활동을 벌였다. 이른바 '후리가리'다.
당시 서울 포이동 200-1번지(제1-2지대) 등에 집단수용돼있던 자활근로대는 제일 먼저 경찰의 표적이 됐다. 이들은 후리가리의 발길질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절도범이 되는 일도 흔했다. 삼청교육대로 끌려가서 목숨을 잃기도 했다. 심지어 86년 아시아경기대회와 88년 올림픽 때는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마을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올림픽이 끝나자 경찰은 자활근로대원의 사표를 일괄적으로 받았다. 이때 강남구청은 구획정리를 통해 포이동 200-1번지를 266번지로 변경하면서 주민(자활근로대원)들의 주민등록 등재를 받아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졸지에 대한민국에 주소가 없는 '기타 국민'이 된 것이다. 말하자면 유령마을이 하나 만들어진 셈이다.
그 뒤 이들에게는 불법점유자라는 딱지와 함께 토지변상금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서울시가 1990년부터 포이동 266번지 116세대(사업자 포함)에 해마다 물린 토지변상금은 연체이자를 포함해 2006년 말 현재 70억원(강남구 추산 3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세대당 평균 6034만원 꼴이다.
"포이동 266, 그 곳에도 사람이 산다."
서울 도심에서 이색적인 길거리 퍼포먼스가 열렸다. '포이동인연맺기학교' 소속 대학생 등 20여명이 25일 오후 4시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앞에 모였다. 이들은 흰 천으로 만든 유령 복장을 하고 나타났다. 국가 폭력에 의해 주민등록을 빼앗기고 유령으로 취급당하고 있는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의 억울함을 폭로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지도에만 없는 포이동 266번지,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라고 적힌 종이판을 들고 강남역 일대를 돌아다니며 1시간 동안 침묵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강제이주 사실 인정 ▲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 등재 ▲토지변상금 철회 등을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이날 행사를 기획한 신희철 한국사회당 서울시당 빈곤철폐특위 위원장은 "군부독재정권에 의한 강제이주에 이어 불법점유자로 전락한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과 함께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투쟁을 선포하는 자리로 거리 퍼포먼스를 마련했다"며 "올해 안으로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포이동 266번지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서울시는 강남구청에서 판단할 문제라는 입장이고 강남구청은 포이동 266번지가 서울시 체비지이기 때문에 서울시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
서울시 도시관리과 김영배 팀장은 "강제이주 사실에 대해서는 서울시가 행정처분을 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답변할 수 없다. 토지변상금과 주민등록 등재 또한 관할구청장이 판단해서 처리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강남구청 관계자는 "해당 체비지 땅이 서울시 소유이기 때문에 서울시와 협의하지 않고는 자치구에서 어떤 행정조치도 취할 수 없다"며 "서울시와 협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뚜렷한 해결책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석희열 기자 shyeol@dailiang.co.kr